북촌길 코스 ( 창덕궁 ~ 계동길 ~ 조계사 )
/ 서울문화유산과 어우러진 경성교화 태동지
대중교화 키운 최초의 여성 수위단원들과 만남
가장 많은 설법 기록된 ' 계동연구회 ' 사랑채
[1794 호 ] 2016 년 04 월 08 일 ( 금 ) 민소연 기자 minso@wonnews.co.kr
▲ 계동길의 이공주 선진 집은 대종사가 많은 법을 설해 소중한 법문으로 남아있는 성적지다 .
원기 101 년 봄 , 세계의 눈이 서울로 모이고 있다 .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이자 , 교단에서도 많은 유적과 기록이 남아있는 서울에서의 원불교 100 주년기념대회 개최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. 기념대회의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도 교단 초기 경성교화의 흔적과 서울의 문화유산을 함께 걷는 7 일간의 개벽순례는 서울을 찾는 국내외 손님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.
서문성 교무와 ' 서울원문화해설단 ' 교도들과 함께 소태산 대종사의 경성교화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.
▲ 개벽순례 북촌길 코스 .
창덕궁 입구를 시작으로 은덕문화원 · 계동 · 시민선방을 잇는 북촌길 코스는 소태산 대종사의 첫 상경과 최초의 여성수위단원들과의 만남 등 원불교 경성교화의 태동이 담긴 자취다 . 대종사가 탄생한 영산성지와 종교로서의 기틀을 잡은 익산을 넘어 , 교화의 큰 걸음을 뗀 시작점이 바로 종로구 계동이요 , 훗날 경성지부의 유공인이자 대중교화자로 맹위를 떨친 여성선진들이 소태산 대종사에게 가르침을 청했던 것이 계동이다 .
또한 북촌길 코스는 소태산 대종사가 각종 종교서적을 탐독하며 유불선 통합의 결실을 맺는 데 있어 역할했던 천도교와 불교의 유적을 잇는 의의도 크다 . 천도교대교당 수운회관과 조계사 ,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인사동 문화거리를 걸으며 , 소태산 대종사가 진리에 대한 탐구와 목마름으로 서적들을 찾아다녔을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.
천도교와 불교 유적 있는 북촌길 코스
소태산 대종사의 첫 상경은 원기 9 년 3 월 30 일 , 최도화의 안내로 송규 , 서중안 , 전음광을 대동한 채였다 . 경성역 근처에서 하루를 묵은 대종사 일행에게 다음날 58 세의 박사시화가 인사를 올리고 조카딸의 집으로 모시니 , 그 장소가 바로 창덕궁 옆 계동 성성원의 집이다 .
90 여 년이 흐른 현재 계동길은 오래된 정취의 방앗간 , 목욕탕에 최근 생긴 카페 , 게스트하우스 등이 오밀조밀 섞여있어 ' 수십년을 오가는 시간여행지 ' 로 불린다 . 지하철 3 호선 안국역 3 번 출구와 이어지는 계동길은 총부 외에 소태산 대종사가 가장 많이 걸어다녔던 길이며 , 경성교화에 큰 힘이 된 대중교화 인연들이 스승을 따라 수없이 오간 곳으로 추정된다 . 이 계동길 가운데 골목 안쪽에 위치한 성성원의 집 현재 주소는 계동길 46 번지 .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인이 살고 있는 주택이라 들여다볼 수는 없다 .
성성원의 집에 온 소태산 대종사에게 박사시화는 쌍둥이 동생 박공명선과 함께 입교 , 경성의 첫 제자가 된다 . 이때 중요한 사건이 서중안과 전음광이 당주동에 1 개월 한정으로 20 여 칸의 가옥을 빌려 거처를 옮긴 뒤 경성 임시출장소라 명명했던 것이다 . 이곳은 현재 경복궁 앞 세종문화회관 뒤편으로 흔적은 찾을 수 없으며 , 교단적으로도 기록이 거의 없다 . 다만 박사시화를 따라 온 궁가의 여인이 소태산 대종사에게 감동하여 함께 살던 침모까지 입교시키니 , 이가 바로 이동진화와 김삼매화다 .
이렇게 첫 상경을 마친 대종사는 총부회관 ( 도치원 ) 건축이 진행되고 있을 즈음 10 월 " 경성에서 만날 사람이 있다 " 며 갑자기 상경해 창신동 이동진화의 수양채로 찾아간다 . 그리고 11 월 22 일 교단 초기의 법과 교화를 세운 민자연화 · 이공주 · 이성각 모녀와 이틀 뒤 이성각의 딸 김영신까지 만나 법명을 내린다 .
▲ 박사시화가 일행을 모셨던 성성원 선진의 집 .
상조금 저축해 영산 논 매입에 보태
이듬해 2 월 5 일 이공주의 30 회 생일 잔치는 소태산 대종사를 모시고 이공주 집 사랑채에서 열렸다 . 이공주는 이후로도 소태산 대종사가 상경하면 자신의 집 사랑채에 모시고 설법을 듣고 수필했으며 , 이 기록은 소중한 법문으로 남아있다 . 원기 13 년까지 총부도 아닌 곳에서 가장 많은 법을 설한 곳이 바로 이 이공주의 자택이다 .
이공주의 집은 현재 계동 103-15 번지로 성성원의 집과 불과 80m 떨어져 있으며 , 성성원 자택처럼 개인소유라 들어가 볼 수 없다 . 그러나 소태산 대종사가 ' 계동출장소 ', ' 계동연구회 ' 라 부르며 원기 11 년 경성출장소 설립까지 그 역할을 담당했다 . 창신동 이동진화의 집과 함께 자발적 모임을 이어갔으며 , 회원 10 여 명이 상조금을 조금씩 저축해 훗날 영산 토지 매수에 보탰을 정도로 든든하고 견고한 조직이었다 .
그러니 ' 약자가 강자되는 법문 ' 등 많은 법을 설한 터전 이공주 자택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. 그런데 공원이 된 돈암동회관과는 달리 이공주 자택과 성성원 자택 , 그리고 북촌길 코스의 최초 창신동 교당터는 지금도 거래가 되고 있어 , 교단 2 세기에 다시 매입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. 답사를 다니며 더러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서울원문화해설단이 방언공사의 심정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펼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.
존중과 배려의 은덕 , 도심 속 시민선방
중앙고등학교 정문을 보고 다시 내려오는 계동길은 북촌길 코스의 하이라이트로 , 이후 북촌한옥마을을 통과해 시민선방으로 이어진다 . 원기 93 년 고 이철원 대호법 · 김명환 종사의 희사로 마련됐다가 원기 89 년 현재의 화동 10-2 번지로 옮긴 원불교시민선방은 도심 속의 선방이자 새삶회의 정신개벽운동의 터전이 되고 있다 .
개벽순례를 함께 한 서문성 교무는 " 시민선방과 함께 원불교여성회가 운영하는 ' 차향기 듣는 집 - 문향재 ' 는 2 시간의 개벽순례 중간에 쉼표를 찍는 곳이다 " 고 설명했다 . 또한 계동길 이전의 은덕문화원은 세상에 원불교를 알리는 공간임은 물론 , 이웃종교나 사상을 한번도 깎아내린 적 없는 소태산 대종사와 교단의 존중과 배려가 담겨진 다양한 담론의 터전으로 의미가 깊다 .
서울을 찾는 외국인들도 손에 꼽는 여행지이자 문화유산들이 즐비한 북촌길 코스는 창덕궁에서 시민선방까지의 2 시간 코스와 , 천도교대교당 , 조계사까지의 확장된 3 시간 코스로 운영된다 . 4 월 25 일 ~5 월 1 일 7 일 동안 서울원문화해설단이 개벽순례를 이끌 예정이며 , 이후로도 순례는 계속될 계획이다 . 친구들이나 단원들끼리 경성교화에 관한 책 한권 들고 걸어봐도 좋을 북촌길 코스 , 어떻게 걸어야 할까 .
서문 교무는 " 인파가 많은 서울 도심인만큼 10 명 안팎의 소그룹들을 추천한다 " 며 " 곳곳에 우리의 성적지와 어우러져있는 서울의 문화유산을 보는 한편 , 중간중간 예쁜 찻집이나 갤러리 등도 들러 쉬엄쉬엄 산책하듯 걸어보자 " 고 전했다 .
▲ 소태산 대종사가 총부 외에 가장 많이 걷고 큰 인연들을 만났던 계동길에 성성원의 집터가 있다 .
교단이 원불교 100 주년기념대회를 맞아 소태산 대종사의 경성교화 발자취를 따라 걷는 개벽순례 코스를 개발하고 이를 안내할 ' 서울원문화해설단 ' 을 양성했다 .
본지는 4 월 한 달간 해설단과 함께 순례길을 걸으며 이를 소개한다 . 지상에서 만나본 소태산 대종사의 경성교화 발자취로 교단 2 세기 서울교화를 다시 생각해보자 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