기념대회 의미 극대화하려면
논설위원 칼럼
[1791 호 ] 2016 년 03 월 11 일 ( 금 ) 박인건 교도 wonnews0601@hanmail.net
▲ 박인건 교도 / 남대전교당
오는 5 월 1 일 '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!' 는 주제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원불교 100 주년기념대회를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.
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기념대회를 여는 의미를 충분하게 살려야 한다 . 원불교의 결집과 화합 , 미래 비전을 선포하는 자리인 만큼 원불교인 자부심의 표출이 그 첫 번째다 .
' 개교 100 년의 결산 , 세상과의 소통 및 희망 나눔 , 새로운 미래를 향한 비전 선포 ' 라는 대회 목표에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. 초심을 잃지 않되 글로벌 마인드에 걸맞은 시스템에도 눈길이 쏠린다 . " 오대양 육대주의 거센 물결 박차고 일원상의 깃발들을 날려주실 후진님들 … ( 성가 103 장 )" 의 결연한 각오를 감지할 수 있다 . 세계로 도약하는 그랜드비전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.
우선 홍보 전략의 내실화 목표를 엄중 평가해 봐야 한다 .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다각적으로 집중 홍보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. 캐릭터와 엠블럼 그리고 프로그램별 홍보 매뉴얼이 무척 다정다감하고 인상적이다 . 소태산의 숨결이 서린 장소와 프로그램마다 스토리텔링을 입혀 ' 법장사 ' 하는 노력도 돋보인다 . 다만 교도 각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가이드라인으로 십분 활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피드백은 꼭 필요하다 .
원불교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작지만 강한 ' 강소 ( 强小 ) 종교 ' 로 압축되고 있다 . 외형상으로 불교 , 개신교 , 천주교와 더불어 4 대 종교의 반열에 오른지 오래다 . 원불교가 주목 받는 것은 소태산의 개벽시대를 여는 종교 , 마음공부로 새 세상의 주인 되는 종교 , 모든 생령을 살리는 종교 , 울을 넘어 하나의 세계를 개척하는 일원주의 통섭종교 등 세계 주세교단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보편성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.
행사 내용을 묻는 지인들이 늘어난다 . 원불교의 역사 자체가 격동기 한국 100 년사와 맞물려 있는 까닭이다 . 저기 어두운 절망의 수렁에서 벗어나 여기까지 오는 발자취에는 숱하게 굴곡진 삶들로 얼룩져 있다 .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지만 역사는 무덤처럼 쌓인다는 말이 있다 . 절망과 갈등 그리고 원한과 원망이 켜켜이 누적되면 결국 자학적인 역사로 서로 물고 물리며 강급 , 악순환하는 게 인과의 이치다 .
우리 근현대사를 보자 .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 , 6·25 전쟁 등 세계 강대국들의 각축전 속에서 겪어야만 했던 희생이 작지 않았다 . 5·16 군사 쿠데타와 유신체제 , 광주민주화 항쟁 , IMF 외환위기 등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것도 마찬가지다 . 비록 짧은 시간에 산업화 ,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생명경시 , 도덕적 타락을 면치는 못했다 . 계층 , 소득 , 지역 , 세대 , 이념 , 남북 간 갈등도 쉬 사라지지 않는다 . 세월호 참사 또한 우리 사회가 자초한 공업이다 . 유주무주 고혼들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통한을 어찌 할 건가 .
그런 절박한 시점에서 시대와 한반도를 뛰어넘는 가치를 제시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. 원불교는 시대적인 아픔에서 비롯된 지난날 원한과 분노를 녹이는 대참회 , 대해원 , 대사면의 길로 인도해왔다 . 우주안의 모든 생령은 물론 우주 자체가 인연 따라 은혜의 관계로 이뤄져 있기에 그러하다 . 숙업의 실마리를 푸는 작업 , 가해자까지도 관용과 포용으로 대덕을 베풀고 악업을 선업으로 돌리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.
그리하여 또 다시 이 세상에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지지 않고 생명존중 , 상생상화의 평화 세상 , 행복한 정신개벽 공동체를 회복하는 기운을 모아야 한다 . 해원상생의 관계로 풀어가는 ' 한국 근현대 100 년 해원 · 상생 · 치유 · 화합 천도재 ' 에 대해 일반인들도 관심이 높다 . 대국민 해원상생 천도재의 종재는 기념대회에 앞서 4 월 25 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다 . 전세계 각 교당의 대적공 대적공 대적공이다 . 이소성대 , 영육쌍전 , 자리이타의 원불교 정신이 100 주년기념대회의 개벽기도로 이어지고 있다 . 그 모두 개벽의 발걸음으로 구체화되면서 원불교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.
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. 원불교가 종교 본연의 역할을 재천명하고 인류의 가치 보편적인 의제를 설정한다는 건 역사적인 사건이다 .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엄부와 자모처럼 , 서북풍과 동남풍처럼 각각 제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건 당연하다 . 고등종교 , 고등정치는 서로 떠날 수 없는 원만한 관계다 . 오직 바람직한 사회 , 건전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.
일원의 법륜을 쉬지 않고 굴리는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믿음이 그래서 중요하다 .